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문단 편집) == 생애 == >나는 한때 루빈스타인의 성품에 매료된 적이 있다. 루빈스타인, 그의 주변에는 마치 햇살이 빛나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그가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로 그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를 알게 되었을때, 그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정말로 긍정적이었다. >---- >[[마르타 아르헤리치]] 당시 [[러시아]] 치하에 있던[* 당시 폴란드는 무자비하게 찢겨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에게 분할 지배당하고 있었다.] 폴란드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독일로 유학하여 부모와 떨어져 지냈다. 빌헬름 켐프, 겐리히 네이가우스 등을 가르친 하인리히 바르트에게 요제프 요아힘의 도움을 받아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 루빈스타인 본인은 꽤나 부정적으로 회고하지만 바르트에게 배운 켐프의 증언에 따르면 루빈스타인의 연주 자세, 음악적 태도 등이 완전히 바르트가 가르치는 그대로였다고.] 그러나 바르트와 루빈스타인은 기질 자체가 달랐고 바르트가 좋은 뜻으로 유태인인 루빈스타인을 입양하여 자기가 가르치는 베를린의 학교의 교수직을 주겠다고 제의하자 바르트와 대단히 좋지 않게 결별하고 어찌어찌 돈을 모아 파리로 [[맨땅에 헤딩]]을 하러 간다. 거기서 좌충우돌에 주변인에게 민폐를 끼쳐 가며 성장, 젊은 시절부터 [[비르투오소]]로 이름을 높였다. 폴란드 출신 답게 평생에 걸쳐 [[프레데리크 쇼팽|쇼팽]]을 연주하였으며, 연주의 수준 역시 매우 높다. 쇼팽 외에 고전파에서 부터 근대 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했으며 대부분 최상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또한 루빈스타인 기준으로 '현대' 음악가의 발굴, 홍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브라질]]의 [[에이토르 빌라-로부스|빌라-로보스]]가 대표적인 예. 그 외에도 시마노프스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스트라빈스키]] 등의 피아노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일단 당시에 활동하던 모든 음악가는 루빈스타인과 친분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19세기 말에 태어난 덕택인지 20세기 출생 피아니스트에 비해 낭만적인 경향의 해석을 보이지만 과하지 않아, 안티가 거의 없다. 파데레프스키, 코르토 등의 연주를 듣다가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들으면 꽤나 모던하게 느껴질 정도. 사실 루빈스타인이 젊을 때는 너무 건조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본인의 말로는 쇼팽 연주가 가장 큰 비판을 받았는데 꿋꿋이 연주했다고.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야샤 하이페츠]] 와 더불어 백만불 트리오를 결성한 적이 있다. 상설 실내악단은 아니지만 틈틈이 무대에 서고 여러 음반을 녹음했다. 하지만 이 트리오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하이페츠와 루빈스타인의 음악적, 개인적 불화가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그 외에 다른 연주자, 그룹과 많은 실내악 녹음을 남겼고 퀄리티가 꽤 좋다. 어릴때부터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람둥이로 유명했다가, 1932년에 22세 연하의 아니엘라와 결혼하여 네 자녀를 두었다.[* 아니엘라는 폴란드의 유명 지휘자 에밀 무이나르스키의 딸] 그 중 아들 존은 배우로 나름 커리어를 쌓았는데,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미드 [[프렌즈]] 마지막 시즌 마지막 화에 산부인과 의사로 출연. 궁금하면 찾아 보자. 아버지와 붕어빵이니 찾기 쉽다. 자서전을 두 권 남겼다. 태어나서 20대 후반까지를 다룬 My Young Years, 그 후를 다룬 My Many Years. 전자는 일부 주변 인물을 가명으로 표기하긴 했지만 꽤나 진솔한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어 냈다는 평이 대부분인 반면 후자는 좀 엉성하고 장황하다. 젊은 시절을 다룬 책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사망한 상태라(...) 눈치 볼 필요가 없어서 그랬다는 분석도 있고, 후자는 루빈스타인의 삶이 안정된 뒤의 이야기이기도 한데다 집필할 때 건강이 악화되고[* 시력을 거의 잃어서 많은 부분을 구술해야 했다] 누가 봐도 임박한 그의 죽음보다 전에 출판하기 위해 제대로 편집을 거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반전은 그의 죽음을 지킨 여성이 아내인 아니엘라가 아니라 수십년 젊은 다른 여성이었다는 점(...) 결혼 후에도 주구장창 바람을 피워 댔는데, 정작 아내만 몰랐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